161029 뮤지컬 <도리안 그레이> 후기 (낮공/세미막공)

161029 도리안 그레이

도리안그레이

2016년 10월 29일 토요일 2시 (낮공) (세미막공)

성남아트센터 오페라극장

2층 C구역 2열 40번대

2층 시야 훤하다 

프롤로그 때 무대 바닥은 스모그와 조명으로 만들어내는 흰 물결. 마치 천국의 구름 같은 느낌이었다. 

2층은 상대적으로 악기소리가 작게 들려서 보컬이 너무 잘 들렸다. 이건 이거대로 너무 좋았다.

뷰리풀월드 2층에서 보는 것 너무나 장관 ㅠㅠ

세미막은 역시 세미막다운 기운이 있어서 모든 넘버에서 진심이 담긴 관객의 박수가 너무 좋았다.

도리안 등장 때 피아노와 도리안이 서 있는 바닥에 창문 모양의 조명이 쏟아진다. 

배질의 화실에서 창문 모양 조명이 바닥에 떨어지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건 처음봤다. 

볕이 드는 창가에서 쇼팽을 연주하는 아름다운 도리안.

도리안 다음부턴 피아노 앉아서 치도록 하자 

라고 하는 배질 ㅋㅋ 진짜 너무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. 

리안이도 순간 웃겼는지 무장해제된 것만 같은 웃음을 지었다.  

자선행사에서 '일어서서' 피아노를 치면서 신을 찬양하는. 

이라고 브랜든부인이 말해서 또 한참을 내적웃음 끅끅거렸다 ㅋㅋㅋ 

태한배우 춤사위는 위(2층, 3층)에서 봐야 더 멋있음. 그 움직임과 그루브

아멈나에서 변함이 없'을' 나'의' 얼'굴' 이 세음절의 소리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.

집중하던 관객들도.

도리안: 저 오늘 청혼할 생각이에요.

헨리: 축~하~해~

도리안을 상심시키는 헨리의 무미건조함 ㅋㅋㅋ

당신은 누구일까 부르는 그 행복한 얼굴과 꿈결같은 목소리 어떻게 잊을까.

언제 다시 볼까.

헨리: 그래서 잤어?

도리안: 헨리! 저 딱 보면 모르겠어요? 막 순수청년이잖아요.(양손을 둥글리면서, 눈사람처럼?) 변태아저씨!

헨리: 오브 콜스!

최악의 줄리엣

말로만 듣던 오페라글라스 들고 등장 ㅋㅋ 앨런만 돋보기!

시빌이 발연기 시작하자 은헨리 자기 머플러로 렌즈 문질문질 닦아서 봄 ㅋㅋ

도리안도 발연기가 심화되자 뾰족한 팔꿈치로 렌즈를 닦아서 다시 봄 ㅋㅋㅋ

도리안 :시빌베인이 아픈 것 같아요

앨런 : 이야 피부 좋네

브랜든 : 아 내가 배질에게 오십여섯번을 설득했지만 오지 않았어

헨리 : 재능이 없는 것도 좀 추해. 같이 가!

세미막 애드립 개터진다. 진짜 다들 너무 좋아 ㅠㅠㅠㅠ

시빌을 버리는 도리안이 어느 때보다 더 슬펐던 것 같다.

분노와 슬픔을 머금은 목소리, 그녀를 뿌리치는 격한 손길 모두.

시빌이 죽고 도리안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씬의 무대 바닥은 푸르른 잎사귀들이 우거진 숲 같다. 

뷰리풀월드 리프라이즈 바닥 색은 여자들의 드레스색과 같은 녹색+블루. 오묘하고 신비로와. 

어느샌가 어겐네이 앞부분인 바다를 항해하는 배경 속에서의 부르는 넘버가 묘하게 거칠어져서 도리안이 탐하는 대상들과 그의 변화가 좀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.

나의 마지막 어겐네이. 언제나 최고의 씬이지만, 음절 하나하나에 기합이 들어있는 느낌.

관객들의 박수에도.

넌 누구 바뀐 연출 진짜 소름 돋았다.

초상화 가두고 내려와서 다시 

넌 누구 어둡게 미소짓는 넌 누구 

넌 누구 빛바랜 표정 사악한 얼굴

하면서 걸어나오는데, 표정과 보컬 톤이 넌 누구 도입부와 대조되어 도리안이 점점 더 흑화되는 느낌이 아주 물씬.

유혹씬에서 나온 도리안은 위태위태해보였다. 

요즘 너무 힘들어요. 약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죠.

대사가 매우 거칠고 불안하게 들렸다.

사라진 아름다움에서의 격한 슬픔.

그리고 도리안 그레이에서의 아름다운 서사.

사실 세미막공을 보고는 이 생각 밖에 들지 않았고 이걸 꼭 쓰고 싶었다.

생각한만큼 제대로 표현하기는 힘들겠지만...

푸른 핏줄 심장을 뚫고 날 깨운다

붉은 피가 내 몸을 다시 일으킨다

황금빛깔 천국이 내게 펼쳐진다

아름다운 소년이 나를 부른다

아무것도 없는 텅빈 무대에 조명 하나.

(물론 이것이 극(極)적인 극(劇)적 효과를 가져다 준 것일지도 모르지만)

아무것도 그를 도와주는 것이 없는 텅 빈 그 곳에 홀로 쓰러져서

소리를 만들어내며 스스로 뱉어내는 가사에 맞는 연기를 보여주는 그 순간.

그리고 그 장면에 매혹되고 설득되는 관객인 나 자신 .

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기묘하고, 신기하고, 소름돋는 경험이었다.

한구절 한구절 소리와 표정과 몸짓이 세밀하게 바뀌며

배우가 자신의 몸 하나로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가 막힌 서사.

점점 약해지다가 다시 울림을 더 하는 마지막 음절의 긴 여운까지..

커튼콜에서 기립해서 박수를 치는데,

전날 인스타에서 말한 것처럼 마지막 도리안과 배질, 헨리가 부르는 부분을 다 같이 부르자는 준수의 손짓 ㅎㅎ

거짓말처럼 그 소절을 따라 부르자마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. 

꿈결같이 짧았던 우리의 소풍은 끝나고

항상 뜨겁던 여름 사라졌네

조심스럽게 떨리는 예쁜 목소리들에 배우들은 웃어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려줬다.

안녕 도리안

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

굿바이 성남

굿바이 도리안

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